빛이 찬란했던, 찬란한, 찬란할 시간
개인전《Microcosm : 태양이 닿은 땅》(내일꿈갤러리, 2025)에 이어서 선보이는 이번 개인전《Underland : 가운데의 생태》(아트센터 화이트블럭, 2026)에서 작가는 땅을 어떤 곳으로 인지하고 어떻게 시각 예술의 언어로 전달할까? 특정 지역을 리서치하여 결과물로 풀어낸 경우 1 도 있지만, 문화영에게 땅은 특정 장소보다는 고정되지 않은 ‘상태’에 가깝다. 그가 인지하듯, 문화영의 작품은 들뢰즈-가타리(Deleuze and Guattari)의 이론에서 다뤄지는 중간 지대로써의 ‘장(milieu)’을 제시한다. 일전에 열린 개인전 《구멍, 바람 그리고 바람소리》(고양 아람누리, 2023)에서 작가는 영상 작업을 선보였다. < 침묵의 소리 >(2023)에서 작가는 무형의 시간을 시청각적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하는데, 흥미롭게도 이 작업은 설산을 조망하는 시선으로부터 출발한다. 광활한 풍경 앞에서 우리는 소리를 듣는다. 무대 조명이 드리워지듯이 산에 빛이 닿을 때, 우리는 무슨 소리를 들을까? 내려다보는 시선은 전체를 시각적으로 파악하려는 시선처럼 보였다가, 미세한 어느 지점을 파고드는 시선으로 전환된다. 전시장에는 전시명과 동명의 작품 < 구멍, 바람 그리고 바람소리 >(2023)를 볼 수 있었다. 버려진 폐종이를 재활용한 이 작업에서 식물이 자라난다. 이 작품은 전시 기간 동안 물과 빛을 받으면서 생명을 키운다. < 침묵의 소리 >와 < 구멍, 바람 그리고 바람소리 >를 교차해서 보면, 국소적인 장소는 땅에 대한 작가의 사유를 ‘깊은 곳’으로 데리고 간다. 겉으로 ‘형태’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의미에 더 가까운 ‘무형’의 시간이 땅에 흐르고 있다. 작가에게 땅은 노출된 것과 은폐된 것 사이를 꿰뚫는 역동적인 장으로 수용되었다.
이번 개인전《Underland : 가운데의 생태》에서 작가는 회화 작업을 선보인다. 실제로 흙을 혼합하여 그린 작품에서 땅이라는 단어는 사용한 재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특정 지역의 흔적을 가리키는 데서 벗어나, 땅은 작가에게 소우주를 감각하는 매체가 된다. 세 점의 회화를 보면, 우리는 < 침묵의 소리 >나 (2023)에서 조망하던 시선을 떠올릴 수 있다. 멀리서 내려다보는 구도에서 땅은 빛을 통(과)해서—빛을 받아 소생된다. 문화영의 작업에서 땅 못지않게 중요한 소재는 빛이다. 잎사귀가 광합성하는 순간을 현미경으로 포착하여 회화로 옮긴 < 태양이 닿은 땅 >(2025)과 < 태양의 요람 >(2026)은 햇빛이 땅으로 내려와 빛을 머금는 자리를 보여준다. 그와 동시에 감상자는 마치 하늘을 우러러보듯이 시선의 방향을 바꾼다. 이 작품이 우주 공간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빛은 대상을 개념적으로 ‘비추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문화영에게 빛은 땅에 닿아 변화의 순간을 감지하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회화 작업 < 태양의 요람 >의 반짝거림은 무엇일까? 그것은 하늘의 빛도 아니고 땅의 빛도 아니었다. 이 빛은 땅과 하늘 사이에서 교신하듯이 호응하는 관계를 보여준다. 입체 작업 < 황혼의 개화 >(2026)는 자연물과 드로잉을 합하여 AI로 생성한 이미지를 구현한 것이다. 햇빛에 노출되면서 일부분이 미세하게 변색하는 이 작품은 우주 공간을 연상케 하는 회화 작업과 교차된다. 씨앗을 배양한 < 구멍, 바람 그리고 바람소리 >의 연장선에서 이 작품은 빛을 머금은 자리에서 생명력을 내포한다.
< 태양의 요람 >을 빛이 잠복하는 땅으로 보자면, 회화는 ‘요람’과도 같다. 문화영의 작업에서 땅은 또 다른 시각적 가능성을 내포하는 장이다. 입체 작업에 ‘황혼’이라는 시간을 가지고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낮과 밤으로 변할 때, 빛은 어둠에 가려지게 된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호흡’이나 ‘숨’은 땅에서 움트는 생명력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하더라도 지속되는 시간을 의미한다. 햇빛이 물러선 곳에서 함양되는 에너지가 아침을 맞이하면서 지표면에 새싹을 틔운다. ‘구멍’난 곳의 어둠은 땅속을 향하고 대지와 하늘을 느리게 연결한다. 모습을 나타나게 된 생명력은 땅속과 그곳에 도달한 먼 곳의 빛에 의한, 뒤늦게 찾아온 발전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문화영에게 빛은 일상에서 간과되는 땅을 주목하자는 눈빛의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거시적 시점과 미시적 시점을 통(과)하면서 땅이 보내온 시간과 앞으로도 보낼 시간을 그려낸다. 황혼은 ‘저물어간다’라고는 하지만, 이 표현은 부재를 향하는 시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가 가늠하기도 어려운 거리에 있는 상공에서 지표면으로 도달한 빛은 시간과 공간의 ‘깊은 곳’으로 도달하여 그 에너지를 다시 지표면에 분출한다. 생명력은 순간적으로 눈앞에 감지된다고 하더라도, 시공간적으로 전후하여 잔향처럼 퍼져 있다. 문화영이 작품에서 다루는 생태(ecology)는 시공간적인 잔향의 지대(地帶)에 넓게 걸쳐 있다. < 태양의 요람 >에서 찬란함이 감지되는 지금, 이 지대는 과거와 미래에 찬란했던 혹은 찬란할 빛을 뿜어낸다.
글 | 콘노유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