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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현 개인전 : passing across
2023.10.20 ⎯ 2023.11.5
홍수현 
홍수현_개인전.jpg
전시개요

⋄ 전시명 : passing across

⋄ 참여작가 : 홍수현

⋄ 전시기간 : 2023.10.20.(금) ~ 2023.11.5.(일)

⋄ 전시장소 :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2전시실 (경기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72)

⋄ 관람시간 : 평일 11:00 - 18:00ㅣ주말 및 공휴일 11:00 - 18:30 | 휴관일 없음

⋄ 관람료 : 무료

⋄ 후원 : 경기도, 경기문화재단

⋄ 협력 :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부대행사

오프닝 리셉션

⋄  일시 : 2023년 10월 20일 금요일, 오후 4시

⋄  장소 :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전시내용

passing a Cross; 한시적 흠집이 모여 만드는 소란

전시장의 계단 위에서 홍수현의 조각¹ , passing across를 처음 내려다본 순간에는 먼저 압도적인 규모에 먼저 눈길이 갈 수도, 일상에 흔하지 않은 마젠타(Magenta)² 색덩어리가 눈에 들어왔을 수도 있다. 작품에 가까워지고 그 주변을 서성인다면 관객의 제스처는 이미 ‘본다’는 것을 넘어서 다양한 감각을 어우르는 경험을 ‘한다’는 쪽으로 순식간에 기울어진다.
   경사로나 계단을 내려가 작품과 가까워질 때 전시장 안에서는 관객의 시야를 포함한 동시다발적 균열이 이루어진다. 먼저, 신체의 자취는 수직 기둥이 모여 만든 조각의 윤곽선을 초월하여 바닥과 평행하도록 이리저리 구부러진다. 신체가 조각을 가로지르고 나면, 관객과 작품의 경계가 해체된다. 관객은 작품을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존재를 넘어서 그 주변에서 주체적인 경험을 주도하는 적극적 참여자로 역할을 변경하고, 조각 덩어리만이 눈을 사로잡았던 전시장에서 조각의 아우라가 점차 소거되어 관객과 작품은 새로운 플레이어의 지위를 얻게 된다.

굴절되는 조각

홍수현은 371개의 각재를 하필이면 일일이 세워서 나열하기로 했다. 눕혀 쌓아 올릴 수도 있을 각재를 낱낱이 세운 까닭을 인간의 신체와 떼어 놓고 볼 수 없다. 작가는 관객이 이 각재들을 ‘지각’하기를 넘어서 그 외 신체 기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그 ‘주변을 탐지’하도록 전시장 환경을 조각했다. (세잔이 그랬듯) 조각을 ‘보는 것’을 조각을 통해 ‘보게 하는 것’으로 시야를 미끄러뜨리는 것과 동시에, 작가는 이 시지각적 인지 과정을 공간에 철저히 기록하기로 했다. 관객이 조각을 처음 마주한 순간부터 전시장을 돌아 나가는 순간까지, 조각 주변에서 발생하는 시각 정보 처리의 메커니즘은 모두 전시장 내에 축적되어 작품과 함께 실시간으로 공간을 변화시키고 있다. 생물학적 구조 특성상 인간의 두뇌는 망막에 맺히는 시각상 중에서도 매우 제한된 영역만을 추출하여 대상을 선명하게 보도록 처리한다. 다시 말해, 필연적으로 제한된 시야에서 대상을 명확하게 지각한 뒤,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선형적, 계열적 처리 방식에 따라 대상을 인지하게 하는 것이다.³ 또한, 같은 대상을 두고도 사람마다, 심지어는 한 사람에게 있어서도 독자적인 주사경로(scanpath)에 따라 대상을 그때그때 다르게 스캔하므로⁴ 작품 passing across는 매 순간 변화하는 작품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눈의 특성에 의존하여 먼 거리에서 가까워지는 순으로 조각을 다시 보자. 가장 먼저 그 규모, 모양, 색채를 볼 것이고, 순차적으로 그를 이루는 수직 기둥의 균일한 배열, 그 틈을 비추는 빛의 대비와 움직임 따위를 인지할 것이다. 눈을 편안하게 두려면 인지 대상과 그 배경의 원근이 균형을 이뤄야 하기 마련인데, 두 개의 천장, 다섯 개의 벽⁵으로 둘러싸인 이 전시장에서는 그 균형이 전부 해체되고 있다. 조각의 윤곽선 안으로 머금어진 LED 조명 빛, 삼면에서 들어서는 자연광, 전시장의 벽, 바닥, 천장에 의해 다방면으로 반사되며 섞인 빛은 하루 시간에 의해, 관객의 움직임에 의해 전혀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고 시시각각 변화함으로써 관객의 시각적 인지 체계를 파괴하는 중이다. 서로 다른 빛의 파장이 끊임없이 충돌하고, 관객의 망막에 맺힌 조각이 다른 신체 기관의 감각과 부딪힐 때쯤이면 이 조각의 형태와 그것이 조각이라는 상태는 그 의미를 잃게 된다.

파괴를 위한 질서

예측 불가능한 자연의 시간과 관객의 움직임으로 변화무쌍한 이 공간 안에서 유일하게 규칙적인 것은 조각을 이루는 각재의 설계다. 홍수현은 관객의 시각장이 혼란스러워지는 틈에 일련의 인지 변화가 작동하도록 2.7cm 두께의 각재를 2.7cm 간격의 틈을 놓고 균일하게 세웠다. 각재 집합으로 이루어진 두 개의 면은 어슷하게 서로를 마주 보며 완벽히 반전되어 있다. 특히 면의 각 한쪽 끝을 둥글게 구부러뜨려 한편으로는 구조물 사이에 인공 빛을 머금도록 두었고, 다른 한 편으로는 관객의 이동 경로를 보다 입체적으로 지휘한다.
   작가의 설계에 따라 관객의 이동 범위는 계단 위에서 계단 밑으로 하강하고, 바닥에서 기둥으로, 기둥에서 기둥으로, 기둥에서 벽으로 수평적으로 뻗어간다. 그리고 형태 인지의 의미를 소거한 조각 덩어리를 앞에 두고 지각장의 변화를 체험하는 관객에게는 새로운 역할이 부여된다. 실체로서의 작품을 바라보는 것에서 나아가, 자신의 걸음 방향과 속도에 따라 달라지는 시야를 인지하면서 작품과 주체적인 상호작용을 이루는 것이다. 요컨대 작품의 표면적 특성보다 그것이 품은 비가시적인 물질들을 보게 만드는 순간 Passing across의 윤곽은 허물어지고, 관객과 작품이 갖는 클리셰도 파괴됨에 이른다. 어떤 경계를 허물기 위하여 또 다른 프레임이 생성된 셈이다.
   무엇을 보아야 할지, 보아야 하는 대상이 맞긴 한 것인지 혼란을 야기하는 조각과 그로 인해 일렁이며 충돌하는 갖가지 감각을 마주한 관객은 조각의 각 기둥을 낱낱이 살피려는 욕망보다는 그 아우라를 외면(passing)하며 이를 가로지르려는 욕망과 기둥 사이를 관음하려는 (“저급한”) 욕망에 사로잡힌다. 조르주 바타유는 일찍이 직립하는 인간에게 있어 건축물은 수평적 시선을 가로지르게 만드는 “졸렬한 모방”에 불과한 것이라고 보았다.⁶ 이에 기대면 passing across를 이루는 모든 수직적 요소와 그 주변에 서 있는 감상자로서의 인간은 빠르게 미끄러져 그 지위가 소거되는 대상이자, 비로소 그 주변을 주체적으로 보게 하는 또 하나의 경계가 된다.

passing across 주변에는 수많은 교차점(cross)이 생성되고 있다. 애초에 전시장 자체를 가로지르고자 사선의 벽 두 개가 세워졌으며, 그 벽 주변에 교차하는 사람이 생기고, 한 사람의 움직임에 의해 수백 개 각재들이 좌우로, 안팎으로 교차된다. 역설적으로 감각의 충돌을 마주할 때 비로소 각 교차점을 인지하게 된다. 가령 전시장 입구 초입에 떡하니 자리한 조각의 볼륨감을 마주할 때, 몸을 움직이며 조각의 범주를 파괴할 때, 각 기둥의 앞뒷면을 의심할 때, 기둥 틈으로 새어/들어오는 빛의 출처를 따질 때 심리적 혼란이 일고 선형적 인지 체계가 흐트러진다. 전시장 바깥에 놓인 드로잉이 사실은 수백 개의 수직선으로 이루어진 덩어리라는 것을 알아채도록 만드는 것, 그래서 드로잉을 하는 작가와 그것을 보는 관객의 가시거리에 균열을 내는 존재는 다름 아닌 터져서 번져버린 펜의 잉크라는 점이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홍수현은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전시장에 새로운 경계를 세워 기존 그곳이 지닌 다양한 경계에 수많은 균열을 일으킨다. 공간에 일시적인 스크래치를 다층적으로 남기는 조각이 이 전시장의 다양한 면을 보게 만드는 것이다. 알고 보면 LED의 색채 외에는 일체의 장식적 요소가 없는 건조한 작품이지만, passing across는 무엇보다 바쁘고 복잡한 궤적을 남기고 있다.


글 | 김유빈 (고양시청 문화예술과 큐레이터)


그동안 발표된 홍수현 작가의 작업 맥락상 혹은 작품의 규모에 의해 ‘(장소 특정적)설치미술 작품’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할 수 있지만, 이 글에서는 주변 환경과 조우하여 다발적인 균열을 생성하는 이번 작품의 특성에 미루어, ‘조각’이라고 칭하기로 한다.
분홍, 보랏빛을 띤 빨강(pinkish-purplish-red)을 말한다. RGB에서 빨강과 파랑을 동일한 비율로 혼합했을 때 나타나는 색으로, 2023년 홍수현 작가가 발표한 작품에 자주 사용하며 직접 “마젠타 색”이라고 표현한다.
로버트 솔소, 『시각심리학』, 신현정, 유상욱 옮김, 시그마프레스, 2003, pp. 29-54.
위의 책, p.140.
이 조각이 설치된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2전시실은 1층에 위치하여 4m의 층고를 갖지만, 세로로 가장 긴 벽은 건물의 3층 천장까지 7m로 트여 있어 건물의 유리 지붕이 2전시실의 한 천장 면을 이룬다. 한편, 이 가장 긴 벽을 마주하는 2층 3전시실은 벽 없이 유리 난간으로 마감되어 있다. 따라서 passing across가 놓인 1층의 2전시실은 문 없는 입구와 건물 유리 지붕, 2층 전시실의 유리 벽 등 세 가지 면에서 자연광을 흡수하는 복잡한 구조다.
이브-알랭 부아 · 로잘린드 크라우스, 『비정형: 사용자 안내서』, 정연심 옮김, 미진사, 2013, p.34.
작가소개

회화를 기점으로 시작된 홍수현의 작업은 차츰 캔버스 표면 위에 구축된 환영의 공간을 벗어나 실재적 공간으로 향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작업을 둘러싼 공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관심은 전시공간 뿐만 아니라 공간 그 자체와 공간을 만들어내는 건축 그리고 빛과 공간을 지각하는 방식으로 까지 뻗어 나가게 된다.

이후 작업을 통해 공간을 다양한 방식으로 인지, 감각하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 작가의 작업은 스스로 경험하고 이해한 공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이를 빛과 공간의 특성을 고려한 구조물을 기반으로 한 설치의 형태로 보여진다.

주로 건축적 구조 외에도 공간이 가진 여러가지 특성에 반응하여 이를 작업의 일부로 이용하거나 전복시키는 방식과 함께 공간 인식에 필수조건인 빛이 가진 재료적 특성과 심리적 작용을 이용한 설치작업을 한다. 이는 설치된 구조물과 빛의 물질적, 비물질적 존재감이 관람자의 공간 지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한다. 최근에는 안과 밖, 유형과 무형의 모호한 경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실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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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sing across≫(2023) 전시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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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sing across≫(2023) 전시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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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sing across≫(2023) 전시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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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sing across≫(2023) 전시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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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sing across≫(2023) 전시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