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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아롱 개인전 : 사라진 것과 사라지지 않는 것이 만나는 지점
2023.9.28 ⎯ 2023.10.15
엄아롱 
[600]포스터_엄아롱.jpg
전시개요

⋄ 전시명 : 사라진 것과 사라지지 않는 것이 만나는 지점

⋄ 참여작가 : 엄아롱

⋄ 전시기간 : 2023. 9. 28.(목) ~ 2023. 10. 15.(일)

⋄ 전시장소 :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경기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72)

⋄ 관람시간 : 평일 11:00 - 18:00ㅣ주말 및 공휴일 11:00 - 18:30 | 휴관일 없음

⋄ 관람료 : 무료

⋄ 후원 : 경기도, 경기문화재단
전시내용

멈춘 채 움직이는 이미지들 사이에서

부피도, 무게도, 비율도 작아지고 얕아진 사물/대상들이 사각의 틀에 걸쳐 서 있다. 새, 교통안내 표지판, 광장의 동상 같은 것들. 평소라면 손을 뻗어 만져볼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들이다. 그것들은 알루미늄 샷시(새시, sash)나 오래된 나무 문틀로 만들어진 그리드에 겹쳐 있거나 서로 멀찍이 거리를 둔 대상들은 관조하듯 아래를 내려다보거나 부여받은 위치에 놓여있다. 이 사물과 풍경들은 원래의 크기보다 작아지고 또 더 작아지는 방법을 취하며, 동일 선상에 있어도 먼발치의 것인 듯 원근감을 확보했다. 서프보드를 들고 가는 서퍼들이 가지 말아야 할 길 앞을 지날 때, 길 건너편 오래된 건물이 그 광경을 바라보고 서 있거나, 마구잡이로 뒤섞인 말을 탄 인물조각상이 피라미드 같은 건물과 각종 간판을 배경으로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기고, 작고 오래된 텔레비전이 바랜 빛을 내비치는 광경이 그러하다. 작품에서 보이는 이러한 이미지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거리의 어느 부분을 뚝 떼어다가 놓은 모양새를 취한다. 이 가변적인 풍경은 언제든 이주를 준비하고 있는 듯 보인다. 사각 틀이 고정된 단단한 시멘트 바닥 아래에 달린 바퀴들 때문일 것이다. 서있는 높이가 달라도 제자리가 있는 듯 뵈는 이미지들이, 부유하고 있는 듯한 감각은 어쩐지 낯설지 않다. 곧 사라져도 어색하지 않을 풍경을 암시하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엄아롱은 유년기를 보냈던 동네들이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으로 인해 사라지거나 이전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는 곳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숱하게 목격했다. 도시는 빠르게 개발되며 동시에 많은 것들을 지워갔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언제든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감각은 뿌리를 댕강 잘라버리는 일에 속한다. 불안 위에 쌓아 올린 것들은 견고한 토대 없이 서로를 붙잡고 서 있어야 했기 때문에 잦은 흔들림을 감내해야 했고, 이곳저곳으로 옮겨지는 일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 과정에서 버려지기 일수였다. 재개발과 재정비는 이를 위해 기존의 모든 것들을 뒤집어엎는 과정을 필수로 가진다. 많은 것들이 그런 식으로 사라졌다. 집도, 가구와 집기, 물건들도,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가진 기억들도 그랬다. 이러한 일들 가운데 도시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을 수집하고 그것을 기록하는 일은 엄아롱이 선택한 생존법이자 위로의 방식이다. 버려진 것 중, 쓸모 있는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나갔던 지난 작업에서, ‘정말 필요한 것들’만 남기고 그 외의 것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통해 다시 해체, 분해, 조립, 재배열되는 과정을 통해 사라져가는 도시와 공간, 사건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 장면들이 여기 이곳에 있다.

이렇게 남은 도시의 사물들은 압축된 이미지가 되어 최소한의 조각이자 평면으로 전시장을 활보한다. 이미 도심을 지나왔으므로, 그것이 실제 움직임을 가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사라진 것과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만나는 순간이 여기에서 일어난다. 작은 쉼표와도 같은 교차점이 소리 없이 가만히 외친다. 우리가 지나친 것에 대해서, 그리고 무수히 지나칠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는 빠른 속도로 도시를 통과해 오고 있다. 많은 것들이 너무 빠르게 변한다는 말하면서. 가끔은 숨이 차서 가슴이 뻐근하게 아플 지경이었다. 시간이 간다는 게, 그런 일을 한다고 이해해 보려 해도 그 이해의 시간마저 집어삼켜지는 시절을 지나오고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멈추고 싶다는 충동이 들 때, 사라져 가면서도 동시에 사라지지 않고 남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할 때, 이곳의 장면들이 떠오를 것 같다

글 | 안성은(성북구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작가소개

엄아롱은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재개발을 목격하게 되었고, 재개발로 인해 주거지를 옮겨야 하는 일들을 겪으면서 도시의 변화들이 한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이 경험은 작업의 재료나 표현 방식, 그리고 작품 내용으로 이어졌다. 수집한 사물을 사용해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거듭하며, 이러한 활동은 작품의 의미와 형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작가의 작업은 주변을 돌아다니며 사물들을 수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흔히 버려지는 플라스틱 용기, 유리 파편, 낡은 가구, 일회용품 등 많은 사물을 작품의 재료로 사용한다.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는 많은 것들이 소비되고 새로운 것들에 의해 이전 것이 너무 쉽게 밀려나거나 사라지게 되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도시환경 속에서 소비되고 잊혀 가는 것들을 목격하고 그것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하였다. 그중 가장 크게 영향을 받았던 것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거주하던 보금자리를 옮기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이 버려진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사용할 수 있는 사물을 주워 모으기 시작하였다. 사물을 주워 모으면서 버려지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였고 자연스럽게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물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사물이 가진 특성에 대하여 그 관점을 바꾸고 변형시켜 또 다른 개체를 만들어내는 데 주목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현재의 고민이나 사회적인 문제, 환경에 대한 생각이 작품에 개입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2014년 “숲이 된 사물” 전시를 통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래, 환경과 도시문제 그리고 도시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