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하지만 단단한 것, 찰나이지만 영원한 것
작가의 작업실은 몸을 바짝 곧추세워 다녀야 할 정도로 여기 저기 물감 덩이가 가득하다. 그의 작업에는 물감 튜브를 짜서 그대로 바른 듯한 많은 양의 물감이 사용된다. 그 물감들은 작가의 작품이면서 작업의 찌꺼기인 동시에, 작업실을 가르는 실제의 벽으로 기능한다. 재현의 방식에서 완전히 다를지라도, 그 물성은 어느 정도 루시안 프로이드의 거친 붓질들로 그려진 짜증어린 얼굴들을 떠올리게 한다. 마치 잠자고 있는 얼굴을 괜히 건드려 보고 싶듯이, 꾹 눌러 뭉개버리고픈 충동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말이다. 프로이드가 구성해 낸 거친 물감 자국들은 인물의 피부색을 표현하는 동시에, 붓질 하나하나로 피부 결을 형성한다. 살들은 서로 겹쳐지고 눌리면서 일시적으로 서로의 형태를 변화시키나, 탄성으로 쉽게 본래 형태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살결은 마음만 먹으면 간단히 도륙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시 연약하다. 이런 점에서 프로이드의 붓질 하나하나는 물감과 살의 물성을 자연스럽게 연동시키며, 캔버스 표면에 붙어 있는 물감 덩이들을 두고 피부 조각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성우의 작업은 무언가의 구체적 재현이 아닌, 캔버스의 틀 자체와 그 위를 덮은 물감 덩이들의 모음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캔버스 앞에 섰을 때 느껴지는 압박감과 물감의 광택, 그림자와 두께에서 발견되는 물성의 힘을 재료로 한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작업을 그저 평평하게 빚어낸 ‘이미지’로서 인식하면, 별다른 특이점이 없는 그냥 그런 추상화로 보일 것이다. 가공된 종이 위의 픽셀과 망점으로는 물감의 물성과 두께를 담아내기가 불가능하며, 물감의 엉김과 서로 밀어내고 당기는 힘 또한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동시대의 회화가 ‘납작함’이라는 단어를 필두로 그 자신을 바짝 캔버스 위에 낮추며 현실과의 괴리에 대해 논하는 와중, 가장 와일드한 동시에 고전적인 방식으로 거리낌 없이 그 자신을 내보이는 그의 회화가 구태하면서도 유일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작가가 그리는 대상은 프로이드의 얼굴들과 달리 구체적 형상이 없다. 그러나 그의 그림을 두고 ‘추상’화라고 단정 지어 말하기는 어렵다. 정확하게 보자면 그의 그림은 재현되는 형상이 보이지 않더라도 꽤 구체적인 대상과 주제를 다루며, 추상적으로 보이는 그 이미지 자체를 바로 그 형상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의 작업에서 다루는 대상이란, 형상이 없는 자체로 하나의 형상이다. 모순처럼 느껴지는 이 조건이야말로 과연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하는, 회화에 대한 하나의 독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려냄’과 재현이 늘 일치하지는 않는 개념이라는 점에서도 말이다.
가령 작가는 그의 초기 작업인 < untitled(work no.6) >를 두고 로드 킬 당한 새를 그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그 말을 하기 전까지 그림에서 어떤 구체적인 형상을 찾기는 쉽지 않다. 제목조차 그 무엇도 가리키고 있지 않기에 우리는 아무런 상상도 할 수 없다. 새의 형상은 그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비로소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죽은 새의 시체는 실제로도 명확한 형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대상이다. 분명 실존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으며, 우연히 그 존재를 깨닫게 되어도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려 버리기 때문에 그 형상을 정확히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본 것은, 그것을 보았다는 사실과 속에서 느껴지는 역겨움, 눈 속의 불분명한 잔상뿐이다. 그림을 두고 “실제로 새나 새의 사진을 보고 그린 건가요?” 하고 물었을 때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아니요 그냥 죽은 새를 바라보는 상황을 그린 거예요”라고 답했다. 그 대답은 많은 질문을 삼키게 한다. (“새가 아니고 다른 동물일 수도 있잖아요?”와 같은 질문은 그런 대답 앞에서 아둔한 질문이 되고 만다.) 그가 그린 것은 단순한 새의 시체라기보다는 ‘정체 모를 것이 거기에 있었다.’ 라는 기시감인 것이다. 존재하나 보이지 않는 상황과 거기에 있음이 분명하나 불분명한 존재들은, 회화가 됨으로서 그 불명확함 자체를 가시화한다. 이는 고정된 대상이 우리의 시선을 따라 어떻게 요동치는 지에 대한 감각과, 불명확하다고 여겨지는 사진으로 포착할 수 없는 것들이 평평한 캔버스에 옮겨지는 방식을 제시한다.
아마 작가가 목공실과 벽이라는 소재에 오랫동안 천착하게 된 이유도 비슷한 데 있을 것이다. 그 공간은 어지러이 무언가가 잔뜩 놓여 있지만 그것들이 전부 무엇인지는 여전히 두루뭉술한 공간이다. 그 공간의 이미지는 그가 그림을 그리는 작업실과 겹쳐지며 그의 회화를 구성하는 물감덩이의 군집과도 이어진다. 달리 말하면, 그가 물감을 쌓아 그려낸 벽은 벽의 재현인 동시에 실제 벽의 제작이 되며, 작업실을 가르는 공간의 생산이 된다. 여기에서 물감은 단순히 색을 내는 안료가 아니라 벽을 구성하는 틀로 기능하며, 물감의 갈라짐은 벽의 균열이 되고, 벽의 질감은 물감의 질감이 된다. 벽이라는 대상이 어떤 경계 자체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형상 없는 형상의 제작이다. 형상과 물질이라는 경계는 벽의 경계 앞에서 무화된다.
최근작을 보고 싶다고 하자, 그는 근래 꽃과 별을 그린 연작 몇 가지를 보여주었다. 이전과 같이 시간을 두고 물감을 켜켜이 쌓아 올려 그려낸 그림들이었다. 꽃은 벽에 완전히 파묻힌 벽지의 꽃 같기도 하고 캔버스에 그려진 꽃 그림 자체 같기도 했다. 별의 그림은 어두운 밤하늘을 침침한 눈으로 보다가 겨우 발견한 반짝임을 묘사한 듯 전체적으로 불분명했다. 두 소재 모두 가장 미술사에서 역사적이며 가장 흔한 소재이면서, 시간의 간격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꽃은 반나절만 지나면 순식간에 시들고, 별은 굳이 고개를 쳐드는 찰나에만 반짝인다. 그러나 거꾸로 꽃은 피고 짐을 반복하면서 그 들판에 영원하며, 별은 늘 그 자리에 있는 존재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모순된 시간의 중첩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평평한 캔버스 위라는 사실은 늘 아이러니하다.
회화란 그런 어긋난 시선과 시간을 물성으로서 붙잡아 두는 것이며, 그렇기에 물성의 성질을 따라 찰나이며 영원하다. 형상을 보여주다가 보여주지 않음을 반복하면서 요동치는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는 한성우의 작업은, 중첩과 어긋남을 그려냄으로서 그 경계를 만들면서 무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그가 선택한 소재에서 출발하여, 오랜 시간을 두고 캔버스 위에 천천히 물감을 쌓아가는 ‘그림’이라는 제스처를 통해 비로소 그림이 되어 우리에게 계속해서 돌아온다. 이것이 우리가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그의 그림에서 형상을 추적하는 이유일 것이다.
글ㅣ박시내(독립큐레이터)
한성우
한성우는 잘 드러나지 않는 어떤 풍경의 이면에 주목하며, 점차 이러한 대상이 감정에 따라 다르게 보이게 됨을 인지하고 불투명한 모습으로 떠오르는 상은 구체적인 이미지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작업의 과정은 자연스레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된다. 한성우(b.1987, 한국)는 고려대학교에서 미술학부 학사,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 전문사 석사학위를 받았다. 《꽃;벽》(플레이스막2, 서울, 2020), 《균형》(송은아트큐브, 서울, 2020), 《땅위의 밤》(에이라운지, 서울, 2017), 《풍경-그림과 그리기》(윌링앤딜링, 서울, 2013)등 9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아나모르포즈:그릴수록 흐려지고, 멀어질수록 선명해지는》 (wess, 서울, 2020), 《당신의 삶은 추상적이다》(아트스페이스3, 서울, 2019), 《scenographic imagination》(베이징코뮌, 베이징, 2019), 《Dramatic Scenes》(스페이스K, 과천, 2017), 《표면 위 수면 아래》(아마도예술공간, 서울, 2016)등 국내외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으며, 청주 창작스튜디오, 화이트블럭 천안창작촌 입주 작가로 참여하였다.
Han Sung Woo pays attention to the back of a landscape that is not well revealed, and gradually recognizes that these objects look different depending on emotions, and the image that rises opaque does not exist as a specific image, so the process of work naturally becomes a process of finding them. Han Sung Woo(b.1987, Korea) received his Bachelor of Fine Arts from Korea University and his Master’s Degree in Fine Arts from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 《Flower; Wall》(Place Mak2, Seoul, 2020), 《Balancing》(Songeun Art Cube, Seoul, 2020), 《Night on Ground》(A-Lounge, Seoul, 2017), 《From Scnery》 (Willing n dealing, Seoul, 2013) held 9 solo exhibitions. 《Anamorphose: depict but blurry, distance but vivid》 (Wess, Seoul, 2020), 《Your life is abstract》 (ArtSpace3, Seoul, 2019), 《scenographic imagination》(Beijing Commune, Beijing, 2019), 《Dramatic scene》 (Space K, Gwacheon, 2017), 《Surface under surface》 (Amado Art Space, Seoul, 2016), etc. Participated in numerous domestic and international group exhibitions, and participated as a resident artist at The Cheong-ju Art Studio (Cheong-ju) and Studio White Block (Cheonan).
한성우, untitled(fw.work no.001), 2021, oil on canvas, 259.1×193.9cm
한성우, untitled(fw.work no.29), 2022, oil on canvas, 259.1×193.9cm
한성우, untitled(fw.work no.25), 2022, oil on canvas, 72.7×60.6cm
한성우, untitled(fw.work no.30), 2022, oil on canvas, 72.7×60.6cm